
세균보다 더 작은 생명체의 발견
1886년 독일의 농업 화학자 '아돌프 마이어'는 담뱃잎에 특정 무늬가 생기는 질병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담배 모자이크병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는 질병의 원인이 세균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6년 후 러시아 생물학자 '이바노브스키'는 이 질병과 관련된 흥미 있는 실험을 합니다. 모자이크병에 걸린 담배를 으깬 후, 이 추출물을 세균도 걸러지는 미세한 필터로 걸렀습니다. 그리고 걸러진 물질을 정상 담배에 투여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정상 담배가 모자이크병에 걸립니다.
하지만 '이바노브스키'는 이를 여전히 세균의 독성 물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세균과 달리 독성 물질은 필터를 통과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만한 것이 그 당시에는 세균보다 더 작은 생물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1898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베이링크'는 같은 실험을 되풀이하면서 필터로 걸러낸 용액에 세균이 전혀 증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세균보다 훨씬 더 새로운 감염체가 있는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감염체를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이렇게 인류사에 바이러스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자현미형의 개발, 분자유전학의 발전과 함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생김새와 구조가 차츰 밝혀집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약 100배나 작았으며, 그 구성마저도 무척 단순했습니다. DNA나 RNA로 된 유전물질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이 거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다양성과 영향력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바닷물 1L 속에는 약 10억 개의 바이러스 입자가 존재했으며, 이들은 세균부터 동물, 식물, 버섯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감염시킬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독감, 에볼라, 에이즈, 신종 코로나 등 인류에게 있었던 다양한 질병들 또한 바이러스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이러스의 탄생에 관한 가설 - 세포 탈출설
과학자들은 작고 단순하면서도 이런 놀라운 특징을 지닌 바이러스를 두고 이 바이러스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바이러스를 최초의 생명체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원시 생명체인 세균보다 더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 밝혀지면서 이런 생각은 금방 깨지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무조건 세포 내 기생을 통해서만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마다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삶을 아주 간략히 묘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와 유전물질과 겉껍질을 방출합니다. 그리고 이 유전물질과 겉껍질은 세포 내 효소의 도움을 받아 증식한 후에 다시 원래대로 재조립됩니다. 그리고 세포 밖으로 탈출해 주변 세포들을 다시 감염하며 증식합니다.
즉 바이러스는 세포 없이는 물질대사도, 증식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세포보다 먼저 지구에 나타났다고 가정하기에는 모순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생물학자들은 바이러스의 기원을 세포 퇴화설로 설명했습니다. 대상 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나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등 많은 바이러스들이 세포처럼 이중 가닥 DNA를 지녔는데, 이들의 DNA는 유전자가 100여 개뿐이며, 크기도 작아서 세포가 퇴화됐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즉 원시 세포 중 일부가 점차 DNA를 잃어가며 작아져서 바이러스로 됐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포 태아설로는 RNA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세포는 유전물질로 DNA만을 지니고 있는데, 만약 이 세포가 태아에서 바이러스가 됐다면 대부분의 바이러스도 DNA를 유전물질로 지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체 바이러스 중 RNA를 유전물질로 지닌 바이러스가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생물학자들은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합니다. 바로 세포 탈출설입니다. 말 그대로 세포 속 유전체의 일부와 효소, 단백질 등이 세포를 빠져나와 바이러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은 DNA는 물론 RNA 바이러스의 기원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나 콩과 식물을 감염시키는 코모 바이러스 등 이들이 지닌 RNA는 세포 속 mRNA의 구조와 매우 닮았습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들의 효소 유전자도 세포의 것과 비슷했던 것입니다.
세포 탈출설에 대한 반박과 또 다른 가설들
이렇게 바이러스의 기원이 세포 탈출설로 확정 지어지려던 때에 이 가설을 뒤엎는 바이러스가 등장합니다. 2003년에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인 미미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 지름은 400~600 나노미터로 기존 바이러스들보다 몇 배나 컸습니다. 그리고 염기와 유전자의 수도 여타 바이러스들과는 비교조차 안 됐습니다. 그리고 2011년 칠레 해안에서 조금 더 큰 메가바이러스가 발견됩니다.
당시 생물학자들은 이보다 더 큰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2년 뒤 그들의 확신은 그대로 깨집니다. 메가바이러스보다 2배 이상 크고, 대장균보다 살짝 작은 판도라바이러스가 발견됐던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2014년에 시베리아 연구 동토층에서 판도라바이러스보다 더 크고, 대장균과 맞먹는 피토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세포 탈출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포의 일부가 탈출해서 바이러스가 됐다는 가설로는 세포만 한 거대 바이러스의 존재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던 중에 2015년 미국 일리노이대의 '구스타브' 교수는 바이러스의 겉껍질인 단백질의 기원이 굉장히 오래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바이러스의 기원을 제4의 생물 영역설로 설명했습니다.
현재 생물은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 영역 총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구스타브 교수는 여기에 바이러스 영역인 제4의 생물 영역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바이러스는 지구 태초의 세포와 닮은 원시 생명이 출연했을 때 이들로부터 원시 바이러스 세포가 분화됐고, 원시 바이러스 세포는 자립된 삶을 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포에 기생하면서 오늘날의 수많은 바이러스로 진화의 가지를 뻗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정의하자면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탈출한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생겨난 생명체 중 하나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2017년 오스트리아의 하수처리장에서 거대 바이러스인 클로스뉴바이러스를 발견한 '슐츠' 박사는 이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유전체 조사 결과, 이 거대 바이러스는 수억 년 동안 숙주 세포의 유전물질을 뺏어오면서 커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슐츠' 박사가 이 연구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하자 일부 생물학자들은 바이러스는 생명 역사 이래로 독립적으로 진화한 생명이 아닌 하나의 입자로서 지난 수억 년 동안 숙주 세포의 유전물질을 강탈해 왔을 뿐이라며 구스타프 교수의 원시 바이러스 세포설을 맞받아쳤습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바이러스는 생명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생물 영역 중 하나일까? 아니면 그저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유전 물질을 담은 입자에 불과할까? 이것은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영역 중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이러스는 생명의 진화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DNA의 8%도 바이러스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늘 우리와 함께일 것입니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과학 지식] 지구에 있었던 2가지 대멸종의 원인은 무엇일까? (0) | 2023.03.03 |
|---|---|
| [과학 지식] 고양이가 반려동물이 된 기원 (0) | 2023.03.02 |
| [과학 지식] 최초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0) | 2023.03.01 |
| [과학 지식] 지구에 초거대 괴수가 존재할 수 없는 과학적인 이유 (0) | 2023.02.28 |
| [과학 지식] 머리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0) | 2023.02.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