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를 잘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뇌를 덜 써야 한다
우리는 뇌를 우리 몸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뇌로만 하는 것이라는 착각은 지능의 증가 이론과 닌텐도의 두뇌 트레이닝 게임, 그리고 뇌가 아주 뛰어났다고 여겨지는 천재들의 전설 덕분에 더 심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로 우리가 머리를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오히려 뇌를 덜 써야 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주로 채식을 하며 하루 종일 안전한 나무 위에서 과일을 먹습니다. 반면 우리 조상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넓은 초원을 거닐며 큰 동물을 사냥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불규칙한 사냥감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인지 능력 향상과 뇌의 발열 해소를 목적으로 뇌의 부피가 커졌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그 뒤로 몇만 년이나 흘렀지만 뇌는 우리가 여전히 사바나 초원을 거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걷거나 뛸 때에 뇌는 사냥에 나선다거나, 포식자에게서 도망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도 걷거나 뛸 때마다 뇌가 생각을 빨리 잘해야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몸의 움직임과 뇌 활동의 상관관계
자라면서 우리는 공부할 때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반대로 몸을 움직이면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체 활동은 우리가 몇십 만 년 동안 자연스럽게 해 왔던 것이고, 뇌가 이 자연스러움을 억누를 때 오히려 의지력과 집중력을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게 된다면 수학 계산과 이성적 사고 등과 관련이 있는 전두엽 피질이 이미 지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움직임을 통제받은 사람들보다 시험 점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 따르면 CT나 MRI 기계로 얻어낸 사진을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해석했던 방사선 전문의들은 그냥 가만히 있던 전문의들보다 평균 16% 더 많이 이상 징후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지 걷기만 했을 뿐인데도 사바나 초원의 사냥꾼처럼 예리한 감각이 깨어나 버린 것입니다.
뇌에게 공간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했습니다. 사냥감의 위치나 도망 루트를 아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뇌는 추상적 정보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 정보는 야생에는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천 자리의 파이 주기율표도 완벽하게 암기하는 기억력 챔피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추상적 정보를 공간과 연관 지어 기억해 내는 장소법이라는 기억수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챔피언들이 보통 사람보다 공간의 기억이나 탐색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을 더 많이 활용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먼 조상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길을 찾고 장소를 기억하는 능력을 추상적 정보를 기억하는 데 활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도 비슷한 훈련이 가능하지만 이런 훈련조차 번거롭다면 이 능력을 활용할 간단한 방법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아이디어를 뇌 밖으로 꺼내놓는 것입니다.
뇌 속 추상적 정보는 정신적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마치 무거운 프로그램이 컴퓨터의 RAM과 CPU 용량을 잡아먹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보들을 꺼내서 종이에 연필로 옮겨 적는다면 뇌는 새로운 활동을 위한 여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능력이 향상됩니다. 여기에 또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파인만'을 인터뷰했던 역사학자 '찰스 와이너'는 '파인만'의 메모와 스케치를 보고 물리학자들의 일상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살짝 짜증을 내며 메모와 스케치를 하는 행위는 단순히 기록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게 곧 생각하는 행위라고 대꾸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뇌는 마치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빅브라더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뇌가 닮은 것은 동네에 있는 동사무소 직원과 같습니다. 이 직원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 외에도 우리 몸으로부터 엄청난 정보의 양이 쏟아져 내립니다. 뇌는 그중 극히 일부만 의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정보는 인지하지 못하기에 뇌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뇌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척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뇌는 무의식적 행동에도 그럴듯한 설명을 하려 노력합니다. 볼펜을 입에 불어서 억지웃음을 지으면 뇌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었다고 해석하는 것처럼. 이런 뇌의 특성 때문에 뇌는 우리 스스로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자극이나 영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뇌가 몸을 조종하듯이 몸도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인데 이를 체화된 자기 조절이라 부릅니다. 이것이 '파인만'이 이야기한 몸으로 사고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은 제2의 뇌처럼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신체로 사고하는 방법과 내수용 감각
신체 활동이 아니라 신체 그 자체로 사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항상 논리적 생각만으로 행동했다면 우린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뇌보다 훨씬 빠른 신체적 사고, 즉 직감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도박 게임 실험은 직감이 뭔지 잘 보여줍니다.
4개의 카드 덱 A, B, C, D에는 포상 카드와 벌금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함정으로 A, B 카드는 아주 교묘하게 손해를 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들은 단지 10장 정도의 카드를 뽑아 확인한 뒤에는 무의식적으로 불리한 덱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참가자들은 불리한 덱을 고를 때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식보다 빨리 우리의 몸이 이미 파악을 끝내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정보를 포착하는 내수용 감각이라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내수용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불합리한 판단과 비이성적 사고에 덜 휘둘리며, 심지어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몸 상태와 감정을 더 정확히 포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감각이 발달한 금융 트레이더들의 평균 수익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내수용 감각은 돈도 더 잘 벌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몸의 감각들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마음 챙긴 명상과 같은 활동을 통해 이 능력을 향상하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20만 년 전 자연 속에서 온몸으로 모험을 하던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회적 환경과 문화가 자연선택을 대신해서 우리를 독립적이고 순수하게 뇌로만 생각하는 개체로 서서히 진화의 방향을 돌려 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전까지는 호기심 많은 뇌를 위해 우리 조상들처럼 많이 걷고, 몸을 쓰고, 직감을 활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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