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 2023. 3. 1. 21:49

[과학 지식] 최초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연발생설과 생물속생설의 대립

 저는 어렸을 때 가끔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더 나아가 조상의 조상까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면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앞서 질문에 현대의 과학인 진화론은 그럴듯한 답을 내놓습니다. 수백만 년, 수억 년 아니 수십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생명체 최초의 조상 루카(LUCA)와 마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카의 존재는 과학자들에게 또 다른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시작됐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여겼습니다. 이 자연발생설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의학자였던 '헬몬트'는 항아리에 치즈와 땀에 젖은 셔츠를 넣고 이를 창고에 두면 자연적으로 쥐가 발생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황당한 주장인 자연 발생설은 무려 200년 가까이 이어져오며 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생물속생설(프란체스코 레디)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1861년 길고 지루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루이 파스퇴르입니다. 그는 플라스크 입구를 백조목 주둥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기는 통하지만 세균은 들어갈 수 없게 한 후, 플라스크 안에 담긴 영양액을 가열해 실제 이 용액에서 자연적으로 생명이 발생하는지 관찰합니다. 그 결과 용액 안에서는 그 어떤 미생물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발생설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생물속생설이 과학계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실험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묘한 딜레마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생명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초기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과정을 설명할 길이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우주로 눈길을 돌리려고 해도 우주 방사선 등 생명의 씨앗이 극한의 우주 환경을 모두 이겨내고 지구까지 날아왔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습니다.

자연발생설과 오파린의 가설

 그러던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식물학회에서 자연발생설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생화학자였던 '오파린'은 최초의 생명은 초기 지구 조건에서는 우연히 그리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원시지구의 대기에는 수소, 메테인, 암모니아 같은 환원성 기체로 가득했는데, 이 기체들이 번개나 자외선 그리고 고온의 니켈, 크롬 같은 금속 촉매 작용을 통해 단순한 유기 화합물로 변했고, 이후 암모니아 등과 결합해 복잡한 유기 화합물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화합물들은 바다에 농축되어 일종의 막을 지닌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조금은 조악한 세포 형태를 갖추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점차 스스로 분열하고 외부와 물질을 주고받는 기능을 갖추면서 단순한 세포로 진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파린'은 자신의 주장을 책으로 엮어 1936년 <생명의 기원>을 출간하며 생물학사의 한 획을 긋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았던 탓에 많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부터 30년이 지난 1952년에 시카고 대학교의 '헤럴드 유리'와 그의 대학원생인 '스탠디 밀러'가 '오파린'의 가설을 실험으로 입증합니다. '밀러'는 플라스크 안에 물을 넣고 끓인 뒤, 여기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원시지구의 대기인 수소, 메테인, 암모니아와 섞이도록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번개가 치듯이 플라스크에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생명을 구성하는 필수 아미노산 등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5개 정도만 만들어졌지만, 나중에는 10개 이상의 아미노산을 비롯해 심지어 DNA 구성 성분인 염기의 일부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원시 지구의 대기가 지금의 금성처럼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산화성 대기였을 수도 있고, 환원성과 산화성의 중간쯤일 수도 있지 않냐며 '밀러'의 실험을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밀러'의 실험에서 수소, 메테인, 암모니아 기체 대신 이산화탄소 같은 산화성 대기를 넣고 실험을 재현하면 아미노산의 생성률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과학자들은 우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생명을 이루는 분자인 아미노산이나 유기 화합물이 운석에 실려 우주로부터 날아왔고, 여기에서 생명의 싹이 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1969년 9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의 머치슨 마을에 떨어진 운석에서는 지구에는 없는 아미노산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86년 헬리 혜성을 탐사한 결과에서도 혜성에도 복잡한 유기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심해열수구에서 찾은 생명 탄생의 기원

 그런데 생명의 재료들이 지구에서 만들어졌던지, 우주에서 왔던지 간에 과학자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연약한 생명체가 어디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초기 지구는 뜨거운 마그마로 가득했고, 운석 대충돌기를 겪으며 초토화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원시지구 바다에는 초기 생명체가 에너지를 만들어 물질대사를 할 만한 에너지원도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즈음에 1977년 지질학자였던 '잭 콜린스'는 생명 탄생의 최적의 후보지를 발견합니다. 바로 심해 열수구입니다. 그가 본 심해 열수구는 황화수소, 황화철 등이 끊임없이 방출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온도는 100도씨가 훌쩍 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생명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열수구 주변에서 엄청난 수의 미생물들을 발견합니다. 특히 이 세균들은 열수 구멍에서 방출되는 수소 기체로 에너지를 만들어 물질대사를 해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연구진들은 심해열수구는 지구 태초에 만들어진 원시 생명체가 안전하게 에너지원을 얻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원시 바다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유기물들은 간단한 막을 이뤄 해저열수 구멍에 안착했습니다. 그리고 구멍에서 방출되는 수소 기체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막 안에서 다양한 물질대사를 해나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부 원시적인 세포들은 복제를 하며 그 개체수를 불려 나갔고, 지금의 세포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일명 심해열수구 가설로 불리는 이 가설은 현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유전자와 생명탄생에 중심이 된 분자, RNA

 이렇게 생명의 기원에 대한 퍼즐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씩 맞춰지는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탄생에 있어 중심이 된 분자가 DNA냐 아니면 단백질이냐라는 논쟁이었습니다.

 1950년대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후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고, 이 RNA를 바탕으로 생명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문제는 DNA 없이는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반대로 DNA가 복제되려면 반드시 효소란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만 원시지구에 출연해 생명 활동의 중심 분자로 작용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1983년 이 논란을 잠재울 놀라운 분자가 발견됩니다. 바로 DNA와 단백질 사이에서 존재감 없이 있던 RNA입니다. 1983년 콜로라도 대학교의 '체크'와 예일대학교의 '알트먼'은 RNA로 이루어진 리보자임이라는 효소를 발견합니다. 이전까지는 생명체 내에서 화학반응을 담당하는 효소는 모두 단백질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이 두 사람은 단백질이 아님에도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있는 RNA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대사를 넘어 자기 복제까지 할 수 있는 RNA가 발견되자 1986년 하버드 대학의 '월터 길버트' 박사는 RNA로 생명 탄생을 설명하는 RNA 월드 가설을 들고 나옵니다. 그는 원시 지구의 DNA나 단백질이 아닌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리보자임 형태의 RNA가 먼저 나타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시 지구는 RNA 분자로 가득한 RNA 색이었으며, 이 RNA는 늦게 등장한 단백질에 화학반응 기능을 양보하고, 더 이후에 나타난 DNA에는 복제나 유전 정보 저장 등의 기능을 물려줘 최초의 세포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쿄 대학의 첨단 과학기술 연구센터에서는 RNA를 시험관 안에서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시키면 효소 기능을 지닌 리보자임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밖에도 지구과학자 '로버트 하젠'은 암석에서 분자가 성장하며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암석 모델을 제시하는가 하면, 진흙 속 광물이 자기 복제자를 형성했을 거라는 진흙 촉매 가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수십 억 년 전 태초의 지구 깊은 바다 어느 곳에서 다양한 화학반응을 통해 생명의 씨앗이 싹트는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고 단 하나의 생명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진화의 역사는 또 얼마나 경이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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