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 과정에서 커졌다가 줄어든 뇌
인류의 뇌는 수백만 년에 걸쳐 급격하게 커졌습니다. 그렇게 커진 뇌는 인류를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로 올려다 줬고, 지금도 인류는 커진 뇌를 바탕으로 여타 동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인류를 상상할 때 극단적으로 커진 뇌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수만 년 전부터 인류의 뇌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인류의 뇌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에 RHKSGO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88년 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였던 '헤넨버그'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바로 4~5만 년 전인 플라이스토세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뇌 크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후기 구석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호모 사피엔스 1만여 개체의 성인 남녀 두개골의 크기를 분석한 결과, 남성의 경우는 1,593cc에서 1,463cc로 약 130cc 감소했고, 여성의 경우는 1,502cc에서 1,241cc로 약 17.4%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테니스공 한 개 크기만큼 줄어든 수치로 작은 차이 같지만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투스의 뇌 크기 차이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당시 인류학 연구 흐름과는 다소 상반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류의 뇌는 300만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커져 왔으며,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서는 그 크기가 더 커졌거나 혹은 거의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호모 사피엔스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최근이라 할 수 있는 4만 년 전부터 인류의 뇌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니 학계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인류학자인 '존 혹스' 교수와 '크리스토퍼 스트링거' 박사 또 식품 인류학자인 '헬렌 리치' 교수와 더불어 <요리 본능>의 저자로 유명한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랭엄' 등 많은 과학자가 과거 '헤넨버그' 박사의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서는 현생 인류의 뇌가 작아졌다는 가설이 점차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습니다.
기후와 농업으로 인한 뇌의 변화
뇌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의문점 하나가 존재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의 뇌가 줄어들었느냐는 질문입니다.
현재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가설은 바로 기후 변화입니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인류학자인 '스트링거' 박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빙하기가 끝난 시기인 약 1만 2천 년 전부터 지구가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류의 신체 크기 축소를 불러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운 기후에서는 열 손실을 막기 위해 표면적 대비 부피가 큰 몸집이 생존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기후가 따뜻해지면 이와는 반대로 몸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졌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스트링거' 박사는 인류의 몸이 작아지면서 여성 골반의 크기도 함께 줄어들었는데 이에 따라 출산하는 태아의 머리 크기도 작아져야 종족 번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두뇌의 크기도 줄어들기 시작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의 허점은 과거에도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두뇌 크기가 지속해 커지기만 한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는 '존 혹스' 교수가 인류의 뇌가 작아진 것은 기후 변화가 아닌 1만 2천 년 전 농업혁명이 가져온 영양 결핍 때문이라는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책에서 농업 혁명은 인류에게 있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농업은 노동시간의 증가와 제한된 영양소 섭취로 인해 영양이 불균형했으며, 당시에 재배 방식이 발달하지 않았던 환경에서는 잦은 기근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오하이오 주립대 인류학자 '클라크 라르슨' 교수는 터키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골들을 분석한 후 당시 농사를 지었던 우리 조상들은 상당수가 영양 결핍에 시달렸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영양 부족은 자연스레 골격 전반의 축소를 불러왔고, 특히 인체 에너지의 20%가 필요한 뇌 역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선택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설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1만 년 전 농업혁명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남아프리카나 호주 대륙에서도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뇌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축화와 뇌 크기의 변화
이처럼 기후도 농업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이번에는 제법 괜찮아 보이는 세 번째 가설이 등장합니다. 바로 인간의 자기 가축화라는 가설입니다. 이는 인간이 가축처럼 스스로 길들었다는 주장입니다. 가축화와 뇌의 크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지난 2021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고생물학자인 '발카르셀' 교수는 가축화된 개의 뇌는 늑대보다 29% 작고, 고양이는 야생종보다 24%, 가축화된 소는 오록스보다 25% 작으며 돼지 역시 야생종에 비해 뇌의 크기가 34%나 작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논문을 통해 야생동물이 가축화되면서 공격성이 사라진 것이 뇌의 크기가 줄어든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가축화된 소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투우 소의 경우는 야생종과 뇌의 크기가 비슷했고, 반대로 젖을 생산하고 가장 온순하게 길든 젖소는 야생종과 비교했을 때 뇌 크기가 가장 많이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인지신경과학자인 '브루스 후드' 역시 <뇌는 작아지고 싶어 한다>라는 책을 통해 공격성을 담당하는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의 감소가 뇌의 크기 감소에 관여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동물의 가축화 사례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인류의 뇌가 작아진 이유가 곧, 우리 스스로가 온순하게 길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애매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리처드 랭엄'과 진화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 교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지난 수만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협력을 통해 정교한 조직을 구축해 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조직에 잘 융화되는 사교성, 집단생활에 잘 적응하는 인내심, 그리고 소통을 잘하는 사회성을 갖춘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았고 그로 인해 인류 집단 전반이 점차 온순해졌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언어의 발달은 의사소통을 더욱 구체화함으로써 인류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길드는데 불씨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브라이언' 교수는 인류는 이런 사회적 길들임의 과정에서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의 분비가 증가하고 반대로 공격성과 관련된 호르몬의 분비는 줄어들면서 인류는 전반적으로 뇌가 작아지는 선택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BAZ1B라는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이는 상냥함과 관련하면서 작은 두개골을 형성하는 것으로 밝혀져 자기 가축화 가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같은 종은 정교한 사회를 이루고 산 고인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서는 자기 가축화 현상이나 뇌 크기 감소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최근까지도 인류의 뇌 크기 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는데, 그러던 2021년 앞선 가설을 모두 반박하는 신기한 가설 하나가 등장합니다.
문자의 탄생과 분업화와 뇌의 관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의 고인류학자인 '제레미' 교수는 985개의 고인류 화석의 두개골을 분석한 후, 인간의 뇌 크기 감소는 농업이 시작된 1만 2천 년 전부터가 아닌 불과 3천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류의 뇌는 3천 년 전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다가 그 이후에는 급격한 감소세를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어떻게 불과 3천 년 만에 뇌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 것일까? 그는 정보의 외장 화와 극단적인 분업화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인류 사회는 지난 5천 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고대 로마 등 도시 국가를 이룩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자가 탄생했으며 이를 기록하고 저장할 방법들이 발명되면서 개인들은 더 이상 수많은 정보를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에서도 집단 지성에 의존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노동의 분업화가 발생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었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도 사라졌습니다. '제레미' 교수는 이 과정에서 인류의 뇌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아지는 선택압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줄어들었으니 굳이 큰 뇌를 유지해 가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논문에서 사회성 곤충인 개미 역시 집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또 노동이 분업화되면 될수록 효율성을 위해 일개미의 뇌 크기는 작아진다고 언급하면서 분업화된 인류 사회는 개미 사회와 비슷하며, 인간의 뇌가 작아진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앞선 가설들은 결국 가설일 뿐 이론으로 정립되기까지는 많은 후속 연구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과학적 가설들은 우리를 엉뚱하면서도 심도 있는 상상 속으로 이끌어줍니다.
AI가 일 처리는 물론, 모든 의사결정을 대신해 주고 모든 정보가 디지털로 저장되는 먼 미래에는 인류의 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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