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 2023. 2. 21. 09:23

[과학 지식] 지구 역사상 가장 지루했던 10억 년

27억 년 전 지구의 모습

 지구는 살아있는 행성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판의 운동이 있습니다. 연간 판의 이동 속도는 고작 수 cm에 불과하지만 판의 이동으로 인해 하루에만 크고 작은 지진이 수십, 수백 번씩 일어나며 거대한 화산 폭발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즉 판의 운동이 역동적인 지구를 만든 셈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아주 오래 전인 27억 년 전으로 되돌리면 그때 당시의 지구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뒤 지구의 대부분은 오랜 시간을 바다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27억 년 전쯤이 되어서야 지구 내부에서 분출한 마그마가 밖으로 뿜어져 나와 차츰 식으며 수면 위에는 여러 개의 육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육지 주변 얕은 해안가에서는 지금의 남세균과 비슷한 작은 세균들이 광합성을 하며 스트로마톨라이트 같은 퇴적물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이때 만들어졌던 원시 대륙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27억 년 전의 육지가 지금의 판처럼 움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각은 단순히 맨틀 위에 둥둥 떠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럴만한 것이 판 운동은 맨틀의 대류에 의해 일어나는데, 지금의 지구는 맨틀의 온도 차가 확연해 대규모의 대류가 규칙적으로 잘 일어납니다. 하지만 27억 년 전 지구의 맨틀은 전체적으로 뜨거웠던 탓에 온도 차가 거의 없어 대류가 약하고 불규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차츰 식어감에 따라 지구의 겉 부분이 빠르게 냉각되자 맨틀의 온도 차가 발생했고, 지금처럼 큰 규모의 대류가 일어나면서 이와 함께 지각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약 19억 년 전 초대륙 누나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초대륙인 판게아보다 훨씬 전에 또 다른 초대륙이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합니다.

 그런데 맨틀의 대류가 활발해지고 초대륙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때부터 무려 10억 년 동안 지구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지구 역사에는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빙하기들이 있었는데 유독 18억 년 전에서 8억 년 전까지는 빙하기가 전혀 없었고, 특히 캄브리아기 대폭발처럼 생명의 화려한 진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기간을 지루한 10억 년, 또는 지구 역사상 가장 따분했던 시기라고 부릅니다.

잔잔한 격동의 10억 년

 그렇다면 이 10억 년 동안 지구는 어떠했을까?

 해양 지질학자인 '도널드 캔필드' 교수는 당시 바다는 황화수소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이른바 캔필드 대안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약 30억 년 전부터 광합성 세균이 만들어낸 산소로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는 점차 증가했지만, 바다 깊은 곳까지 산소로 채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해저 화산에서 발생한 황화수소로 인해 수심 20m 아래부터는 산소보다는 황화수소의 농도가 높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황화수소를 먹고사는 박테리아나 고세균, 그리고 암석에서 풍화된 황산염을 먹이로 삼아 황화수소를 방출하는 황환원세균 등이 번성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바다는 황화수소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 아마도 엄청난 악취가 코를 찔렀을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10억 년 동안.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 시기는 절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18억 년 전에는 지구에 진핵생물이 처음 등장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진핵생물은 큰 세균이 산소호흡을 하는 세균이나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 같은 작은 세균을 포획하며 진화한 생물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먼 훗날 진정세균, 고세균, 진핵생물과 같은 거대한 분류군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실제로 지구 곳곳에는 이 당시 진핵생물의 흔적이 발견되곤 합니다.

 지난 2017년 고생물학자 '스테판 벵슨'은 인도 빈디아산맥에 16억 년 전 지층에서 홍조류와 비슷한 진핵생물 화석을 발견했고, 중국에서도 17억 년 전 지층에서 진핵생물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진핵생물들은 대체로 산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산소가 풍부한 얕은 해안가에서 번식했을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해 수많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균류까지 속한 진핵생물이 등장한 이 시기는 어쩌면 지루한 것이 아닌 가장 중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때는 빙하기만 없었을 뿐, 맨틀의 대류로 판이 이동하며 지구는 더욱 역동적인 행성으로 변모해 나갔습니다. 초대륙이었던 누나는 여러 대륙으로 분리됐다가 약 10억 년 전쯤에는 이들이 다시 합쳐져 로디니아란 새로운 초대륙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바다에서는 악취가 진동하며 최초의 진핵생물이 등장하고 거대한 지각이 시시각각 움직였던 이 시기를 과연 지루하다고 보는 게 맞을까?

 여기까지 알아보니 궁금증이 생깁니다. 10억 년 동안 지루했던 이 시기는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났고, 그 이후에는 무슨 일들이 있어서 생명의 다양성이 촉발된 6억 년 전의 에디아카라기, 또 5억 4천만 년 전에 캄브리아기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빙하기 그리고 생명의 대폭발

 지루한 10억 년을 종식한 것은 다름 아닌 약 8억 년 전 찾아온 빙하기였습니다. 이른바 눈덩이 지구 가설입니다. 이 빙하기를 시작으로 지구는 지루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앞서 기재한 로디니아란 초대륙이 눈덩이 지구의 시발점이라고 2013년 지질학자인 '그랜트 영' 박사는 주장합니다. 로디니아 대륙은 약 8억 년 전부터 여러 대륙으로 나눠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분출되며 대규모의 현무암 지대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현무암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현무암으로 흡수되면서 온실 효과가 급격히 떨어져 지구가 냉각됐습니다. 그리고 당시 태양은 지금보다 약 10% 정도 어두웠기 때문에 지구가 눈덩이로 변하는 데 한몫했을 것입니다.

 또 2017년 '프란시스 맥도날드' 교수는 지금의 캐나다 북서부 쪽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며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대기 중으로 분출됐고, 이것이 태양 빛을 가려서 빙하기가 더욱 가속화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사실은 빙하기를 촉발한 로디니아 대륙은 빙하기를 끝낸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8억 년 전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였지만,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로디니아 대륙이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약 6억 3천만 년 전까지 대륙이 계속 갈라지며 해저에서는 지속해 이산화탄소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무암 지대가 얼음으로 덮여 있던 탓에 이전처럼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지 못했고, 결국 대기 중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로 지구를 덮고 있던 얼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눈덩이 지구 가설을 연구한 '폴 호프먼' 교수는 당시 지구의 대기 온도는 무려 50도 가까이 올랐을 거로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생명 다양성의 시작은 막을 내린 눈덩이 지구의 끝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광합성 세균들은 많은 양의 산소를 만들어서 대기와 바다의 깊은 곳까지 공급했고, 기존 단순했던 진핵생물들은 에너지 효율이 좋은 산소를 바탕으로 더 크고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또 얼음에 갇혀 있던 암석들이 지표에 노출되면서 풍화, 침식이 일어나 인, 칼륨, 철, 칼슘 같은 무기 염류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곧 동물들의 외골격이나 신체 조직을 구성하는 재료들로 이용되어 생물 다양성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에디아카라 동물군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캄브리아기에 들어서는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생명 대폭발이 일어나며 놀라운 진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렇듯 지루한 10억 년을 거친 결과, 지구는 비로서야 살아있는 행성으로 거듭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요즘은 어떻습니까? 혹시 지루한 날들의 연속입니까? 어쩌면 여러분의 지루한 하루하루는 마냥 지루하기만 한 것이 아닌, 더욱더 멋진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지구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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