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 / 2023. 2. 7. 13:07

[과학 지식] 지구를 바꿔놓은 신생대의 온난화

수천만 년 전에 있었던 온난화

 산업혁명 이후 약 20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은 1도 올랐고 기후변화 관련 국제기구인 IPCC에서는 2,300년에는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약 5~6도 정도 더 오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 인류가 마주한 가장 크고도 가장 불확실한 환경 문제인 지구 온난화는 과거로부터 단서를 얻어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생대 지구의 온도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에는 5,600만 년 전인 팔레오세의 말부터 에오세의 초까지 20만 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평균 기온이 5~8도나 오르는 역사상 가장 짧으면서도 강력했던 극열기라는 온난화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팔레오세-에오세의 최대 온난기. 줄여서 PETM이라 불리는 이 시기는 현재 지구 온난화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어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먼 옛날 이토록 급작스러운 온난화는 왜 일어났으며 당시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리고 기온은 어떻게 다시 낮아지게 된 것일까? 수천만 년 전에 있었던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퇴적층에서 발견된 탄소로 밝혀진 과거의 온난화

 1991년에 '제임스 캐넷'과 '로웰 스콧'이라는 지구 과학자들은 남극 대륙 근처에서 추출한 해저 퇴적층 코어에서 팔레오세와 에오세의 경계 지층에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바다로 녹아든 흔적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 이후 전 세계의 지층에서 팔레오세의 말에 대량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쏟아져 나온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약 5만 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에 무려 44,000Gt의 탄소가 쏟아져 나와 급격한 지구 온난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결과 당시 지구의 평균 온도는 최대 8도나 높아졌으며, 극지방의 해수 온도는 최대 20도까지 오르게 됩니다. 현재 남극해의 최대 온도가 10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당시 지구가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 것은 무엇일까? 과학계에서는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석탄이 저장된 층을 대규모의 산불이 태워버리면서 대량의 탄소가 방출됐다는 가설. 다른 가설로는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해 탄소가 방출됐다는 것 등이 나왔지만 이 정도로는 팔레오세의 급격한 온실 효과를 설명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메테인 하이드레이트 가설입니다.

 1995년에 '제럴드 디킨스'는 팔레오세 당시 신생대에 막 접어들었던 지구는 지금보다는 온화한 기후였기 때문에 극지에 얼음이 조금씩 녹으면서 여기에 갇혀 있던 강력한 온실기체인 메테인이 방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체가 지구 온난화를 빠르고 강력하게 촉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계속 가다듬어져 현재는 PETM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완벽한 정설로 자리매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2005년 '루카스 로렌스' 박사는 <네이처>에 팔레오세-에오세의 최대 온난기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원인 중 하나인 지구의 세차 운동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지난 2016년 '모건 셰럴' 박사는 <사이언스지>를 통해 탄소가 풍부한 해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대기 중에 다량의 탄소가 공급되면서 온난화가 촉발됐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팔레오세의 말 지구에 온난화가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격한 온난화는 지구의 생태계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온난화가 신생대 생태계에 미친 영향

 우선 지금과 가장 대조적인 지역부터 알아보겠습니다. 5천600만 년 전의 남극의 연평균 기온은 16도이며, 겨울철 평균 기온은 11도였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겨울철보다 따뜻했습니다. 당시 남극 대륙에 야자수와 속씨식물이 자랐으며, 여러 곤충과 포유류들이 뛰노는 푸른 낙원이었습니다. 실제로 남극 동부에서는 고대 야자수와 양치식물의 포자들 및 열대작물의 꽃가루 화석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남극 서쪽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을 보면 PETM 시기에 고대 유대류인 우드부르노돈 카세이, 안타르크토도롭스 같은 주머니쥐를 비롯해 큰 포유류인 안타르크토돈 등이 남극에 살았습니다.

 이처럼 지금과는 다른 생태계는 남극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캐나다와 그린란드 지역에서는 악어나 거북이 등의 파충류가 살았고 현재는 지구의 중심부에 있는 야자수의 분포 지역이 당시에는 남극과 북극 부근까지 확장될 정도로 전 세계가 온화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PETM 시기에 발견된 식물의 화석 10개 중 6개에서는 곤충에게 파 먹힌 흔적들이 발견됐는데, 고 식물학자인 '스코딩' 박사는 파 먹힌 흔적은 당시 더워진 기후로 곤충이 번성하여 식물이 곤충들에게 시달린 흔적이라고 말합니다. 또 식물 잎의 가장자리 모양을 보면 PETM 시기 이후엔 톱니 모양에서 매끄러운 모양으로 잎이 변하였는데 이것 역시 기후가 따뜻해졌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잎 가장자리의 모양과 기후와의 상관관계는 1915년에 밝혀져서 현재에도 고기우학 연구에 종종 사용되곤 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팔레오세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대림이 형성되자 빽빽한 나무숲에 적응해 나무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테일하르디나 같은 영장류가 북미와 유럽 대륙에서 적응방산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03년, 고생물학자인 '깅그리치' 박사는 PETM이 시작된 이후 13,000년에서 22,000년 사이에 북미와 유럽 쪽에서 초기 영장류들이 굉장히 많이 나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는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가 수천만 년 전에는 인류 기원의 실마리가 됐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지구 전체가 푸른 낙원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육지와 달리 바다의 생태계는 지옥을 맞이하였습니다. 적도 인근의 해수 온도가 36도까지 올라 먹이 사슬의 근간이 되는 해양 플랑크톤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또 대기로 흘러나온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바닷속으로 녹아들면서 해양이 산성화 됐고, 이때 증가한 수소 이온이 탄산 이온과 결합해 바닷속 탄산염 농도의 감소를 불러왔습니다. 그 결과 탄산염으로 외부 껍데기를 만드는 유공충 같은 해양 생물들은 껍데기를 만들 재료가 부족해서 35~ 50%가 멸종하기에 이릅니다. 보통의 해양 지층은 탄산칼슘 껍데기를 만든 유공충들이 화석화된 덕분에 밝은 색을 띠지만 PETM 시기의 해양 지층은 수많은 유공충이 사라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검은색의 어두운 지층이 형성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탄산염으로 몸체를 구성해야만 하는 산호도 그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면서 해양 생태계는 전반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구 냉각에 관한 가설

 지구는 이렇게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급속도로 냉각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제대로 밝혀지고 증명된 것이 없어 현재로서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가설을 찾아보자면 개구리밥이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구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의 이름은 아졸라로 개구리밥과 비슷하지만 고사리와 가까운 수색 양치식물입니다.

 PETM 시기의 끝 무렵인 5,555만 년 전. 북극해에는 투루가이 해협을 통해 바닷물이 유입되고 있었는데 대륙 이동으로 해협이 막히게 되자 마치 흑해처럼 북극해가 한동안 고립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때 육지의 강물이 북극해로 유입되면서 북극해의 표층은 바닷물이 아닌 일시적인 담수 층으로 변했고, 덕분에 민물에서만 번식할 수 있는 아졸라가 북극해의 표면을 뒤덮게 됩니다. 북극해를 비롯해 지구 전역에 번식하기 시작한 아졸라는 당시 대기 중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죽은 뒤에 바닥에 가라앉아 탄소를 격리했습니다. 이 덕분에 온실효과는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고 지구는 기온을 회복하게 됐으며, 더욱 시간이 지나자 빙하기까지 맞이하게 됐다는 가설입니다. 2006년 네덜란드 해양 지질학자인 '헹크 브링크스'가 이 가설을 연구해 <네이처>에 기고했으나 아직은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탄소 배출량과의 비교

 역사상 가장 강렬했던 5,600만 년 전의 지구 온난화와 현재의 지구 온난화를 비교하면 어떨까? 놀랍게도 탄소 배출 속도는 현재가 더 빠릅니다. PETM 시기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0.24Gt인데 반해 현재 연간 탄소 배출량은 무려 10Gt에 달합니다.

 물론 PETM 시기에는 수만 년에 걸쳐 탄소가 배출되었기 때문에 총배출량은 PETM 시기가 더 많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만약 지금 같은 속도로 탄소가 배출된다면 불과 1,000년 만에 PETM 시기와 비슷해질 거라고 말합니다.

 과연 지구 온난화가 지구의 멸망으로 이끌까? 어쩌면 과거 팔레오세의 때처럼 육상 생태계는 오히려 다채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부 생태계는 큰 타격을 입겠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그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종이 나타나 생태적 틈새를 채워 나갈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란 종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서식지 축소, 식량 부족 등으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지구를 구한다는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는 더욱 현실적인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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