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꾸는 사람
사람들은 잠을 잘 때 꿈을 꾸곤 합니다. 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멋진 모험을 하기도 합니다. 꿈을 꿀 때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도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꿈을 꿀 때 우리의 뇌 부위 중 하나인 전액골 피질(prefrontal cortex)이 꺼집니다. 이 부분은 패턴 속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역할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한 꿈을 꿔도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꿈을 꿀까? 그 사람들은 꿈을 꿀 때 시각적인 꿈을 꿀 것인가?
후천적 시각 장애를 얻은 분들은 꿈을 꿀 때 앞이 보이는 사람처럼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시각 장애가 있는 분들은 시각적 경험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으므로 꿈속에서도 그 감각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뇌의 신호 작용과 꿈
정신과 의사인 '폭스(Foulkes)' 박사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꿈에서 시각적 경험을 하지 못하고 촉각, 청각적인 꿈을 꾼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의외로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도 꿈에서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꿈을 꿀 때 크게 두 가지의 수면 상태를 겪습니다. 비렘수면과 렘수면입니다. 비렘수면은 매우 깊은 잠이 드는 것이고, 렘수면은 얕은 잠을 의미하는데 뇌가 어느 정도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을 꾸는 원인에는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뇌 일부분 중에 전기 신호를 시각적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뇌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시각 피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아무 신호도 들어오지 않을 때 갑작스럽게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부분에서 스스로 신호를 생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무작위 신호를 뇌가 해석해서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꿈이라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선천적인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면담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묘사하는데, 그 묘사가 진짜 무엇인가를 눈으로 보고 묘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선천적인 시각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모아 꿈을 그림으로 묘사해 달라고 하여 그 둘을 비교해 보았을 때 서로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각적인 상상을 하지 않는 상태의 뇌에서는 알파파라는 뇌파가 검출됩니다. 반대로 마음속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다면 알파파가 약해집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리며 꿈을 묘사할 때 그림이 생생하면 생생할수록 이 알파파가 약해지는 게 관찰됩니다. 다른 일반 사람들이랑 똑같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다른 감각으로부터 온 정보가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을 제외하고 청각, 미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들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서로 구별이 거의 안 된다고 합니다. 뇌 속에서는 같은 전기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기 신호들이 시각을 처리하는 부분으로 가느냐, 청각을 처리하는 부분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뭔가를 보기도 하고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신호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샛길로 새기도 합니다. 아래의 경험은 다들 겪어봤을 것입니다. 알루미늄 포일을 보고 이가 시린 느낌을 받는다든가, 머리를 벽에 부딪혔을 때 번쩍이는 섬광을 본다든가 하는 경험입니다. 이러한 경험처럼 다른 여러 감각이 동시에 느껴지는 공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들이 뇌 속에서 조금씩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선천적 시각 장애인들이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귀나 코 같은 다른 감각 기관으로부터 온 신호가 샛길을 통해서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뇌의 후두엽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가정을 합니다. 이전에 과학자들은 눈으로부터 어떤 신호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후두엽이 활동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의 뇌를 스캔했을 때 다른 감각으로 가야 할 신호나 다른 뇌 활동에서 온 신호가 후두엽으로 잡음처럼 계속해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시각의 일차적 목표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을 탐사하는 것이므로 뇌는 여러 군데에서 들어오는 각종 신호를 종합하여 어떻게든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가설을 냅니다. 이것이 선천적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꿈에서 뭔가를 볼 수 있다는 뜻일까?
1차 시각 피질의 작용
그런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봤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뇌에서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합니다. 눈을 뜨고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보면 그 신호는 뇌의 시신경을 통해 후두엽으로 전달됩니다. 그곳에서 받은 신호를 해석하고 다른 부위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과정이 끝이 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본 것이 의식적인 시각적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1차 시각 피질이 꼭 필요합니다. 1차 시각 피질이 동작하지 않는다 해도 뇌는 무의식적으로 사물을 보기 위해 눈도 움직이고 빛이나 사물을 감지할 수도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1차 피질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 현상을 맹시라고 합니다. 맹시 환자들은 본인이 실명한 줄 알지만, 일반 사람들처럼 장애물도 피해 갈 수 있고,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의 뇌에서 이 1차 시각 피질이 활동하고 있다면 그들도 의식적으로 뭔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일까?
소리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
미국 선천적 시각장애인 단체 중에 'World Access For The Blind'라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마치 박쥐처럼 입에서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사물에서 반사된 것을 듣고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커뮤니티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소리를 들을 때 사물의 재질, 거리, 모양 이런 요소들을 꽤 섬세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뇌를 조사해 보면 이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 때 시각 피질이 활발하게 활성화됩니다. 시각장애인들의 뇌가 실제로 소리를 받아들인 후 그 정보들을 공간 정보로 재해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긴 이릅니다. 뇌 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사람들이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소나 비전'처럼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예민한 감각들을 이용해 주변 사물을 확인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음파를 이용해 주변 사물을 감지하는 박쥐가 실제로 소리를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 사람들이 겪는 주관적 감각은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더 같은 장비가 소리 정보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보로 표현해 주는 것처럼 시각장애인들도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만 해봅니다.
시각장애인들의 꿈에 대한 반론
어쨌든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과학자들이 생각한 것은 시각장애인의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들이 실제로 활동하므로 그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나 꿈에서나 진짜로 무엇인가를 봤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들도 있습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은 꿈에서 뭔가를 봤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 경험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퍼즐을 맞출 때 눈을 감고 있어도 우리가 퍼즐을 만져봄으로써 그 모형을 대충 알 수가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도 꿈에서 느낀 여러 가지 감각을 이용해서 상황을 이해한 것일 뿐 실제로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봤다는 증거는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릴 때 알파파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에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뇌에서 나타나는 알파파의 패턴과 시각장애인의 뇌에서 나타나는 알파파의 패턴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의 알파파는 시각적인 무언가를 상상할 때가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상상해 낼 때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각장애인이 꿈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연구는 오직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진행되고 있으므로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알아낼 방법은 아무래도 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는 수밖엔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과학 지식] 비누와 알코올, 구리, 잠자리의 세균, 바이러스 사멸 효과 (0) | 2023.02.10 |
|---|---|
| [과학 지식]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광속 보다 빠른 물질 (0) | 2023.02.09 |
| [과학 지식] 유전자를 편집하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0) | 2023.02.08 |
| [과학 지식] 사람은 왜 운동을 해야만 근육이 생기는 걸까? (0) | 2023.02.07 |
| [과학 지식]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일 (0) | 2023.02.07 |
